붉은 나무젓가락
서진연 소설집
l 304쪽 l 값 12,000원
l 펴낸날 2013년 10월 21일
l 판형 140*210(무선철)
l ISBN 978-89-01-16106-8(03810)
l 웅진문학임프린트 곰 펴냄
l 주소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87-1 가야빌딩 4층
l 담당 장지희(02-3670-1535)
“영혼은 바다를 건널 수 없대요…….”
아름다운 울림만큼 몸서리치게 선연한 슬픔
서진연은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나무젓가락」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미 세 권의 에세이에 공동 필자로 참여하고, 한 권의 그림동화를 발표하였지만 이 소설집은 작가가 6년 동안 진중하고 성실하게 발표해온 네 편과 미발표작 네 편을 묶어 펴내는 첫 소설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등단작이자 표제작 「붉은 나무젓가락」을 비롯하여 「글루미 선데이」, 「아내를 위한 비망록」, 「괴산」, 「카파도키아」, 「퍼즐 맞추기」,「서쪽 강 너머 노을이 지면」, 「그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 8편의 소설들은 소재와 구성 방식의 신선한 변주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2007년 《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작 「붉은 나무젓가락」에 대한 박범신, 오정희 소설가의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인의 쓸쓸한 이면을 이승과 저승, 대한해협과 한·일 양국의 역사적 배경으로까지 확장시켜 형상화한 점이 돋보”이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현대인의 단절과 그것에서 비롯된 상실, 상처 등을 호들갑스럽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밀도 있게 그려내었다.
▣ 단절된 소통 속에서 부유하는 우리의 삶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데 있어서 소통과 교감은 중요하다. 그것이 없는 관계는 빈껍데기와 같아 소통이 부재한 관계 속에 있는 이들은 외롭고 불행하다. 그렇게 고립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은 어딘가로 혹은 누군가에게 안착하지 못한 채 부유할 수밖에 없다.
서진연의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에 수록된 작품의 인물들은 불행하다. 사랑하는 남자와 아이를 잃고 삶의 의지를 버린 여자(붉은 나무젓가락), 믿었던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자(아내를 위한 비망록), 매일 술에 절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과의 삶이 고통스러운 아내(글루미 선데이), 동성 애인을 두고 이성과의 원치 않는 결혼을 한 남자(퍼즐 맞추기)……. 그들은 자신의 불행을 견디지 못한 채 운명적으로 때로는 자의적으로 비극 속에 몸을 던진다.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는 대신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거나, 술에 취한 남편에게 독약을 먹이려고 계획하거나, 아내와 바람을 피운 남자를 찾아가 그의 자동차를 망가뜨리고 그의 죽음을 도모한다.
소설 속의 주요 관계는 대부분 가족인데, 그들 사이에는 대화가 거의 없다. 혼자서 단정하거나, 상대가 듣건 듣지 않건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대화가 없는 관계에서는 소통이 불가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진연 소설의 인물들은 외롭다. 함께 이야기를 하며 그로써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소통이 부재한 이들은 그것을 갈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소설의 인물들에게는 그것이 특별하게 중요하거나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마음이 제거되어 있다는 것, 외로움과 불통(不通)에 대한 고집은 오히려 그만큼 간절하다는 것의 반증일 수 있다. 함께 나눌 때 비로소 나의 슬픔과 아픔이 온전히 제대로 보이고 그때에서야 치유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 희망이 거세된 현대인의 쓸쓸한 이면을 비릿한 슬픔의 기억으로 채우다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비극적인 결말에 쉽게 노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너무도 빠르게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리는 동시에 때때로 현실을 왜곡하며 합리화한다.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그렇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망각은 가속도가 붙는다.
서진연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의 인생을 과거의 기억에 크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기도 하고 안개 속의 사물처럼 뿌옇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친구의 말 한 마디로 인해 송두리째 잊고 있었던 과거의 암울한 시절의 기억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거나, 서로 다른 남녀가 각자의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얽히고설킨 충격적인 관계가 드러나기도 하고, 부모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묻혀 있던 기억이 어떤 그림과 사진을 우연히 본 후 떠오르게 되는 등 소설에서는 기억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과 그것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관계와 사건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얼마나 왜곡된 기억에 의해 조종당하며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다시는 꺼내보지 않을 것처럼 자신만의 방에 불행의 기억을 단단히 매어두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불행은 내 안에서 여민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불행은 끊임없이 생성된다는 것을.
소설 속 인물들은 굳이 자신을 불행을 극복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견디면서 흘려보낼 뿐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지 않는 작품 속 그들은 오히려 행복에 대해 권태로운 것처럼까지도 보인다. 기억의 우리 안에 매여 있는 이들만이 불행할 뿐이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해서 과거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누군가의 삶이 과거 기억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기 힘들다는 것과 같다. 과거는 어떤 지점으로의 회귀가 가능하지만 미래는 한 지점으로 이를 수 없다. 현재와 미래는 결국 예정되어 있는 과거일 뿐이다. 슬픔과 불행은 시간과 그 시간에 고여 있는 기억에 의해 피고 또 진다. 과거에 대한 비관주의적인 응시를 통해 전망 없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 긍정과 낙관의 환상적 틈입을 경계하면서 비극에 미리 대처하는 작가의 전략은 한국 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아우른다.
서진연의 소설을 통해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의 슬픔을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온전히 슬픔으로 채우고 난 후의 도래하는 비극의 종말을 꿈꾸어 볼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의 글
서진연의 소설은 확실히 수사가 자제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은 그만의 어떤 운율이 느껴질 만큼 문장이 유려하다. 그가 수사를 사용할 때는 사물과 정황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표현해낼 때이다.
2007년 새해 아침 신문에 「붉은 나무젓가락」이 실렸을 때 많은 독자들이 그가 그려낸, 아니 그가 그림처럼 표현해낸 붉은 나무젓가락의 상징과 실체에 전율했다. 영혼은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 그럼에도 현해탄 건너에서 태중에 숨이 끊긴 아이의 영혼이 진한 잉크 냄새 속에 활자를 따라 우리 영혼 안으로 스며들듯 소름이 돋았다. 그때의 전율 그대로 나는 이 작가가 빠르게 자기의 세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소설 속의 인물처럼 오래, 힘겹게 투병하고 강한 의지 속에 다시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그가 작품과 생에 보여준 힘이다.
지금도 「붉은 나무젓가락」을 기억하고 자기 작품처럼 필사해보는 문학 지망생들이 많다. 그런 독자들과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서도 그는 다시 작품 속으로 소설 속의 무대보다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는 충일되어 있고 건강하다. 이 작품집으로 이미 힘차게 다음 세계로 걸음을 내딛고 있다.
- 이순원(소설가)
▶ 차례
붉은 나무젓가락
글루미 선데이
아내를 위한 비망록(備忘錄)
괴산(槐山)
카파도키아
퍼즐 맞추기
서쪽 강 너머 노을이 지면
그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해설 | 이정현 사소하고 비릿한 생의 풍경과 ‘나’
작가의 말
▶ 본문 중에서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그곳에 남겨진 너의 영혼을 따뜻하게 안아서 데려올 수 있었던 걸까. 서늘하게 앉아 그 빈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던 너였지만 그 모습 그대로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리고 시간이 너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곁에 있던 나도 덧없이 흐르던 시간도 너를 채우지 못하고, 그날의 예감대로 너는 내게로 걸어 들어왔던 모습 그대로 다시 걸어 나갔다.
「붉은 나무젓가락」, 31쪽
다시 일기를 쓰고 싶은 밤이 있다. 텅 빈 노트를 대할 때의 설렘, 손가락 끝에 감도는 펜의 감촉, 머릿속을 떠도는 무수한 상념이 깨알같이 글자들을 만들어 내려갈 때면 어떤 덩어리가 저 밑바닥부터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던 그 벅찬 시간들. 많은 날들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보면 거기엔 또 다른 내가 있다.
「글루미 선데이」, 52쪽
저녁을 먹으면서, 사람의 일이란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거다, 라고 말하며 터뜨리던 정빈의 너털웃음이 떠올랐다. 그럼, 끝까지 살아봐야지.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우리도 니들 오기 전에 세 번이나 죽으려고 했었단다. 그런데 살아 있으니 이렇게 좋은 날도 오잖니, 하고 말하며 아이에게 생선을 발라주던 영희의 주름진 손마디가 떠올랐다.
「괴산」, 123쪽
정민은 삶은 닭처럼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고, 식도와 위의 점막이 헐고, 손톱과 발톱이 빠지고, 뼈와 근육들이 녹아내리는, 어쩌면 죽음으로만 끝낼 수 있는 긴긴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여행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걷고 싶어졌다. 직선으로 내리쬐는 햇볕 속을 바삭바삭 그을려가는 구릿빛 피부로 씩씩하게 걸으며 자연이 빚어놓은 광활한 그 시간의 박물관 앞에 서서 층층이 쌓여 있는 시간들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고 느끼며, 손바닥만 한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늘하게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땀을 식히고 물 한 모금 마시고 검은 선글라스 낀 눈을 들어 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야 저 너머의 지평선을 바라보고 싶었다.
「카파도키아」, 159쪽
▶ 해설 중에서
서진연의 첫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은 빛나는 우연과 삶의 도약을 기대하는 낭만적 믿음을 거부하는 개인의 서사로 가득하다. 누구나의 삶이 그렇듯 이 소설집의 인물들도 우연과 마주하지만 소설들이 응시하는 지점은 ‘우연’이 아니라 우연이 스쳐간 이후에도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희망이 거세된 삶의 풍경이다. 서진연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낭만적인 꿈을 꾸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불행과 고통, 궁핍과 유배된 삶을 담담하게 서술할 따름이다. 낭만적인 믿음을 걷어내고 비릿한 슬픔으로 채워진 그녀의 소설들은 천천히 읽힌다. 당연한 일이다. 인과와 필연이라는 설정을 걷어낸다면 삶의 시간은 한없이 느린 법이니까. (……) 사르트르의 주장과는 달리 지옥은 ‘나’의 슬픔을 외면하는 타인과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옥은 고독과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무엇이며 단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의미가 반감되고 만다. 작가의 텍스트는 그 공허함을 건너면서 진화한다. 나는 앞으로 작가가 ‘나’의 슬픔을 태연하게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게 되기를 바란다. 비극을 관리하는 방식을 깨우치는 것은 부조리한 세계를 건너는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슬픔이 지독하게 개인적이라는 진실은 ‘나’를 작고 무력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타인의 슬픔에 개입하는 계기가 된다. ‘나’의 슬픔을 응시할 수 있는 자는 타인의 슬픔에도 반응할 수 있는 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처음에는 ‘나’만을 바라보다가 ‘너’의 슬픔에 감응(感應)하면서 비로소 깊어지는 존재이므로.
- 이정현(문학평론가)
▶ 작가 소개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나무젓가락」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공동 에세이 『가족은 힘이다』 『수업』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그림 동화 『옥상에 텃밭이 생겼어요』를 출간하고, 2010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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